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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도 즈음...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던 시절 같은 반 친구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었다. 좀 잘 살았던 친구의 집에는 놀랍게도 로얄 컴퓨터라는 회사에서 나온 애플2 호환기종의 컴퓨터가 있었다. 모노크롬의 그린 모니터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컴퓨터였다. 친구가 5.25인치 디스켓을 플로피 드라이브에 넣고 명령어를 입력하자 모니터에는 F-15 스트라이크 이글, 로드런너, 레스큐 레이더스 등의 재미있는 게임들이 튀어나왔다. 당시 오락실에서 오락 한 판 하는데는 50원 이라는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돈이 들었었는데 이렇게 집에서 공짜로 게임을 할 수 있다니 그것도 수 십 가지의 게임을!!!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50원이 없어서 오락실 가서 남들 하는것 구경하는게 낙이었던 시절이니 충격을 받을만도 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너무나도 컴퓨터가 갖고 싶었다.

그날로부터 오로지 전자오락을 집에서 하기 위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개인용 컴퓨터는 외국업체의 카피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제조회사마다 소프트웨어도 호환이 되지 않았고 심지어 같은 회사의 제품끼리도 호환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독자적 규격의 컴퓨터는 슬슬 단종되는 상황이었고 애플계열과 MSX 계열의 호환형 컴퓨터가 살아남는 상황이었다. 애플은 애플2, 애플2+, 애플2e 등이 판매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MSX는 MSX1, MSX2 등의 컴퓨터가 있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이 무슨 돈이 있으랴 그것들을 구입하려면 최소 20만원을 넘는 큰 돈이 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20만원은 아마도 지금의 100만원을 훨씬 넘는 가치였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 부모님을 졸라서 사는 수 밖에...

당시에는 민컴이라는 회사에서 컴퓨터학습 이라는 잡지가 발간했었다. 학생층을 겨냥한 컴퓨터 전문 잡지였다. 그 잡지의 광고를 보면서 어떤 컴퓨터를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라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결론 내린것은 위와 같은 MSX1 계열의 컴퓨터였다. 이유는 다른 기종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TV에 연결 할 수 있어서 모니터를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무엇보다 게임의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대부분 일본에서 발매된 아케이드나 롤플레잉류의 게임이었는데 재미있는 게임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동생과 함께 많은 고민과 고민 끝에 위 사진의 컴퓨터(금성 FC-80, MSX)를 사달라고 떼를 써 봤다. 하지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를 하고 하루 하루 지나가던 어느 날 당시 G사에 다니시던 아버지가 퇴근길에 커다란 박스를 들고 오시는 것이었다. 컴퓨터였다! 나는 위의 MSX 컴퓨터일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그것은 FC-150 이라는 컴퓨터였다. 실망...

그 때 부모님께 물어보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MSX 와 애플계열의 컴퓨터만 살아남던 그 시절, 아마도 아버지가 다니던 G사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악성재고 폭탄세일을 하지 않았었나 생각이 된다. 그래서 아버지도 큰 부담 없이 구입을 하게 되신것이고... 아마도 부모님은 자식들이 갖고 싶은걸 선뜻 사주지 못해 속이 상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지금이야 이런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시절... 

아무튼 우리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TV에 연결해서 하나 하나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위의 기종은 MSX와 전혀 호환이 되지 않는 기종이고 이미 구입시점에서는 단종되고 망한 컴퓨터라 게임도 구할 수가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서 FC-150에 대해서 설명을 해 보면 팩이 3개가 있었는데 BASIC-I(기본언어), BASIC-F(과학,수학계산용), BASIC-G(그래픽,게임) 의 3가지 특화된 기능을 가진 언어팩이 있었다. 이 중 기본으로 I 와 F 가 박스에 들어 있었다. 헌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G 가 없었다. G 팩을 꼽고 게임 프로그램을 입력하면 컴퓨터로 집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인데 팩이 없다.

우리에게 전혀 쓸모 없는 컴퓨터였던 것이다.

그렇게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던 어느날 서점에 들러서 컴퓨터쪽 서적들을 둘러보던 중 FC-150에 관한 책이 있었다. 빼서 보니 놀랍게도 'BASIC-I 를 이용한 게임프로그램' 이라는 책이었다. BASIC-I 언어팩을 꼽고서 책에 있는 프로그램을 입력하면 게임이 되는 것이다. 바로 책을 구입 후 집에와서 정성들여 책에 있는 소스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눈알이 빠질것 같았다. 모두 입력을 하고 실행을 했다. 에러가 난다.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다시 한 줄 한 줄 확인. 잘 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다시 실행, 드디어 실행이 되었다! 장애물을 넘는 매우 형편없고 단순한 게임이지만 정말 플레이가 되었다. 디스켓 드라이브가 없었던 나는 카세트 테이프에 프로그램을 저장했다. 그 후로도 그 책의 소스는 아마 모두 입력해서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생각나는건 위에서 말한 장애물 게임과 문 패트롤 이라는 게임이었다.

문 패트롤과 장애물 게임. 내가 집에서 플레이한 최초의 컴퓨터 게임이 되었다. 그것도 핸드 메이드로 소스를 직접 입력해서 플레이 한...  아마 80년대의 내가 지금 2017년에 온다면 정말 신세계에 방문한 것과 같을 것이다. 수 많은 게임을 공짜로 할 수 있는 시대이니.

그렇게 8비트의 시대가 저물고 MSX의 시대도 저물면서 나의 FC-150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보관했으면 꽤 비싼 가격에 팔았을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다. (아마도 이사하면서 버렸던것 같다.) 그렇게 나의 최초의 컴퓨터 FC-150이 없어지고 나는 게임이 하고 싶으면 오락실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였다. 그 후에도 MSX2, MSX3도 나오고 애플2도 꽤 장수했지만 MSX 계열은 사라지고 애플2는 매킨토시로 대체되면서 16비트의 시대가 시작된다. 

16비트의 시대는 단연코 IBM PC의 시대였다. 대학에 들어가니 IBM XT (8088 CPU) 컴퓨터가 있었다. 하드디스크는 없었고 두 개의 플로피 드라이브가 달려있었다. A드라이브에 DOS 디스켓을 넣어서 부팅한 후 B드라이브에 들어있는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식으로 작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능도 형편없고 어떻게 저런걸 사용했나 싶지만 그 PC로도 워드, 스프레드시트, 오토캐드 등의 작업이 가능했다. 당시에는 대학수업 중에 EDPS 라는 교양과목이 있었다. 번역하면 '전자자료처리시스템' 인데 아무튼 그 수업에서 XT 컴퓨터로 아래아한글 1.51 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 부모님께서 새 PC를 사 주셨다. 용산 나진상가에 아버지와 같이 가서 고른 IBM AT(80286 CPU) 컴퓨터였다. 모뎀이 있어서 통신도 가능했으며 40MB의 하드디스크도 달려있는 꽤 좋은 컴퓨터였다. 무려 용산에서 수원 우리집까지 업자가 직접 배송을 와서 설치를 해주고 갔던 일이 기억난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그 컴퓨터 가격이 160만원 이었다. 지금은 160만원이면 최고급 사양의 PC를 뽑고도 남을 돈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컴퓨터는 일종의 사치품 이었다. 아마 쓸만한 컴퓨터 한 대의 가격이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 정도였을 것이다.

이 컴퓨터는 정말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그 수명을 다할때까지 정말 잘 사용한 컴퓨터이다. 게임이면 게임, 레포트 작성, 캐드, 그래픽 등등 못하는게 없는 컴퓨터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은 컴퓨터 통신이었다. 인터넷 망이 없었던 당시에는 전화선을 이용해서 통신을 했는데 나는 천리안(데이콤)을 했었다. 모뎀을 통해 전화선으로 천리안 서버에 접속해서 통신을 했었다. 채팅도 즐겨 했으며 각종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이다. 가끔 정모도 했었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었다. 한 번 행사를 하면 100명도 넘게 모였었으니까 온라인 모임이 흔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이렇게 모이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아무튼 컴퓨터 통신은 신세계 였다.

천리안을 하다가 과도한 요금때문에 사설 BBS에서 활동하기도 했었다. 호롱불이라는 서버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개인이 서비스를 구축하고 사용자를 모집해서 활동하는 그런 서비스였다. 당시 내가 살던 수원지역에도 몇 몇 사설 BBS 가 있었는데 나도 가입해서 활동했던 기억이 있고 거기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모임도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군대에 가게 되었고 제대를 하니 세상은 한층 더 발전되어 있었다. 윈도우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오랫동안 PC의 운영체제로 활약하던 DOS 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윈도우95 라는 새로운 운영체제가 발표된 것이다. 물론 기존에도 윈도우3.1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 그걸 쓰지 않고 도스를 사용했었다. 그러다가 윈도우95의 발매를 계기로 사람들은 진정한 GUI(Graphic User Interface)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윈도우95와 함께 펜티엄 컴퓨터의 시대도 열렸다. 인텔에서 펜티엄 CPU를 개발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최신기술이 들어간 펜티엄 CPU가 발표되었고 윈도우95의 보급과 맞물려서 컴퓨터도 세대교체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도 역시 새로운 컴퓨터 구입을 고려했다. 그 당시 잘나가던 컴퓨터 회사가 있었는데 나름 괜찮은 성능에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 세진컴퓨터였다. 진돗개가 광고모델 이었는데 대기업 컴퓨터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했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세진컴퓨터에서 펜티엄 컴퓨터를 구입하게 되었다. 당시 150만원 정도를 주고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기에 HP프린터 까지 구입했다. 펜티엄1 이었고 2GB의 퀀텀 하드디스크, 컬러 모니터, 28800bps 모뎀, 놀랍게도 그래픽 카드 겸 TV카드도 달려 있어서 TV도 나왔었다. 

무엇보다 제일 신기했던건 사은품으로 준 터미네이터2 CD-ROM 이었다. VCD(Video CD) 라는 것인데 이걸 컴퓨터의 CD-ROM 에 넣으니 컴퓨터 화면에서 빵빵한 소리와 함께 영화가 나오는 것이었다. 지금은 컴퓨터로 영화를 본다는게 당연시 되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집에서 보는 영화는 비디오 가게에서 테잎을 빌려와서 보는 것이 상식이었다.

아무튼 이 컴퓨터도 꽤 오래 잘 사용했었다. 각종 레포트 작성, 캐드, PC통신, 게임... 특히 스타크래프트를 이 컴퓨터로 처음 했을때 꽤 충격을 받았었다. 그 후 디아블로1, 퀘이크 등의 명작게임들도 이 컴퓨터에서 플레이 했었다.

아마도 이 정도까지가 나의 어린시절 컴퓨터에 대한 추억일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시절은 없어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었던것 같다. 컴퓨터로 예약하는 대신 전화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 대신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면 되는 세상이었으니까 

지금의 아이들에게 컴퓨터, 스마트폰이 없다면 살 수 있을까? 아마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항상 네트워크에 묶여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회가 된 것이다. 누구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이니 뭐니 하지만 내 생각에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나는 어린시절에 이런 문명의 이기를 다루고 정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다루고 정복해야 한다. 그래야 정보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간단하게 쓰려다 어떻게 키보드 가는대로 떠들다보니 글이 길어지고 개똥철학까지 나오게 되었다. 어찌됐든 나의 어린시절 컴퓨터에 대한 추억을 되돌아보면 그 시절엔 부족한 정보를 채우기 위한 열정이 있었던것 같다. 지금은 그런게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런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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