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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중학교 1학년쯤 이었을 겁니다.
집에는 19인치, 14인치 로터리 채널식 TV가 있었고 대우 VTR이 돌아가고 있던 시절...

금성사(현재의 LG전자)에서는 모델명 FC로 시작하는 '패미콤'이라는 가히 
닌텐도 네이밍스런 PC가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추억의 보물섬, 소년중앙, 학생과학 같은 잡지를 보면 항상 광고가 나왔던 기억이 나고
나는 정말 정말 갖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랐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곧 이어 대우에서 IQ-1000 그리고 금성에서는 FC-80 이라는 MSX 호환기종이 발매되었습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MSX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명작 게임소프트웨어가 엄청나게 많았고
나중에 대우에서 나온 재믹스라는 게임기가 MSX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만 봐도 PC용도로 사용하기보단
게임기에 가까운 PC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정말 정말 가지고 싶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며 부모님을 조르기도 많이 졸랐지만
거의 30만원에 달하던 높은 가격은 졸라도 졸라도 MSX를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허구한 날 컴퓨터학습이라는 잡지나 사서 몇 번이나 탐독하면서 머릿속으로만 게임을 하곤 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봤냐면 잡지 뒤 쪽에 나오는 프로그램 소스코드까지 다 읽었으니까요.

그렇게 그렇게 머릿속엔 컴퓨터 생각이 떠나질 않고 시간은 가고... 또 가고... 어느 날...

아버지가 퇴근을 하셨는데 손에 커다란 박스가 들려있었습니다.
앗! 패미콤~!!!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아버지께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시 금성 계열사에 다니시던 아버지 회사에 재고처리용겸 직원 판매용으로 싸게 
패미콤이 나왔었던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 기종이 MSX인줄 알았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내일 친구들한테 게임테이프를 빌려 돌려볼 생각에...
그러나 다음날 친구한테 빌려온 게임테이프는 돌려도 돌려도 로드되지 않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FC-150 모델은 MSX와 호환이 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됩니다. 
아! 그 때의 절망감이란...  ㅠㅠ
한참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 모델은 일본의 sord라는 듣도 보도 못한 회사 모델의 Copy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게임을 한 번 해 보겠다는 신념으로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오옷! FC-150 게임 프로그래밍 (?제목은 잘 생각 안나네요.)이란 푸르딩딩한 표지의 책이 떡 하니 있었습니다.
볼 것도 없이 바로 사서 집으로 뛰어 왔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가 보니... 이 책에 있는 게임소스를 실행하려면 BASIC-G 라는 그래픽용 확장팩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기본팩인 BASIC-I와 과학계산용 BASIC-F 라는 팩 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절망... 

아마도 지금 기억으로는 그 책은 읽고 읽어서 닳아 없어졌고...
BASIC-I 를 꼽고 돌아가는 초 간단한 게임 몇 개를 엄청난 소스입력 노동 끝에 할 수 있었고...
BASIC-F 를 꼽고 같이 딸려온 매뉴얼에 있는 알 수도 없는 소스를 입력해 필요도 없는 과학계산을 하고...

그러다가 그냥 그렇게 기억속으로 잊혀져갔죠.
그리고 FC-150은 어떻게 없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아마도 다락에 보관하다가 이사가면서 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수 많은 PC들이 저를 거쳐갔고
지금은 FC-150의 수 천배 성능의 PC를 쓰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대로 게임을 할 수 있지만 
그 때 만큼의 열의는 생기지 않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컴퓨터 게임 한 번 원 없이 해보는 것이 희망이었고
정보가 귀중하던 시절 한 권의 책은 사막의 오아시스 였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기위해 레코드점에서 음반을 사고
좀 더 싸게 영화를 보려고 지저분한 동시상영관에 가던 기억들...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거의 공짜로 넘쳐나게 구할 수 있고 감상이 가능한 세상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많은 정보들에 부작용이 생깁니다.

쏟아지는 정보에 가끔 기억상실에 걸립니다.
어떤 음악은 MP3에 담아두고 한 번도 듣지 않고 삭제하기도 합니다.
영화를 빨리 돌려서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마음이 조급해 집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어린시절 3.58Mhz의 CPU를 가졌던 FC-150을 추억하며 
느릿느릿 가슴에 새기며 좋은 책 한 두권쯤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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