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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너무 너무 공감가는 글이라 퍼왔습니다.

글 발견 주소:
http://www.vincentkwak.com/123   [Vincent's Blog]
원본 글 주소:
http://www.thegim.com/Etc/View.php?tname=columnist&no=80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너,외롭구나']


[너,외롭구나] 예술이 밥먹여주냐? 응! 몰랐냐?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 사는게 사는것 같지가 않아서 미쳐가고 있다. 날마다 저녁 뉴스는 엽기적인 살인, 강도, 납치, 자살 소식으로 가득하다. 예전부터 미국을 그렇게도 동경하더니 드디어 엽총은행강도가 등장했다. 선진국을 그렇게도 동경하더니 드디어 자살률 세계3위라는 경이로운 기록에 초고속으로 도달했다. 아파트에서 성적을 비관으로 낙하하는 청소년들, 카드빚에 뒷산 아카시아 나무에 목매단 청년들, 자신의 거대한 회사 사옥에서 투신한 대기업회장까지 살기 힘들다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만도 하루에 평균 36명꼴. (2002년 기준, 세계보건기구 조사) 기가 막힌다. 2001년에 하루평균 19명이던 것이 1년새 36명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것은 또 하나의 한강의 기적이라 이름해도 마땅하다. 그리고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들이 직장을 못 구해 탱탱 놀고 있다. 청년실업이 건국이래 최고점이다. 얼마나 어렵게 들어간 대학인데, 그 졸업장 하나 따려고, 그래서 만년 편하게 먹고 살겠다고 온 청춘을 송두리채 바쳤는데, 대학 졸업 이후에는 인생이 다 끝난 듯 아무 일도 없다. 아무 할일이 없다. 자격증을 줄줄이 갖추고 이력서를 수 백 통 전국에 날려보아도 와 보라는데 하나 없다. 청년이 놀고 있으니 큰일이다. 어떤 녀석은 PC방에서 3박4일을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에만 열중하다가 결국 컴퓨터앞에서 죽어버렸다.

대한민국이 자멸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침몰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라고 걱정하겠지만, 한편 또 다른 통계를 보자면, 백만장자 증가율 세계 1위라는, 웃을까 울을까 망설여지는 놀라운 기록까지 겸하고 있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양면이다. 이런 상황을 가지고, '슬픈일이 있으면 기쁜일도 있는 법이야'라고 자위해도 될런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몰라 몰라, 정말 모르겠다. 모르고 살고 싶다. 모른채 살고 싶다. 그런데 나도 살기 힘들다. 살맛이 안난다. 한편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린 민초들이 줄줄이 스스로 이승을 하직하고, 전국 수 십 만의 PC방에서는 희망없는 젊은이들이 밤새워 온라인 게임에 청춘을 바치고 있고 한편에서는 관리비만 300만원씩한다는 초호화 아파트들이 잘도 솟아 오른다. 세상 부조리하고 먹고 살기가 녹녹치 않다는 것이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서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산다는 것이 고단해야만 하는가.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어께 한번 디밀어 보자고, 국민소득 2만불 한번 해보자고 발버둥인데 그게 참 코 앞에서 단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제자리 걸음. 내가 제자리 걸음이라지만, 남들은 전진하고 있으므로 사실 제자리 걸음은 뒷걸음질이 된다.

둘러보니 온 세상은 MADE IN CHINA. 이쑤시게부터 신발, 인형, 옷, 주방용품, 전자제품에 농수산물 먹거리까지 이 세상은 온통 중국 그 자체다. 그 다음 세상은 일본과 미국과 유럽이 있는 이른바 선진국의 세상이다. 우리는 어디있나. 우리가 섰던 자리에 모두 중국제가 차지했다. 그 자리를 물려줬으니 우리는 선진국 대열로 업그레이드 됐어야 마땅한데 어째 바통 터치를 제대로 못했다. 전해주기는 했는데 전달 받지는 못했다. 지구촌 생존 레이스에서 탈락위기.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독한 불경기와 실업률. 심각한 빈부격차. 고단하고 천박한 삶의 질. 총체적 난국. 그렇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무엇인가. 국민이 무식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무식하다고? 문맹퇴치한지 옛날이고, 교육열 높기로 세계 둘째가라면 분통터지고 집집마다 대학 안나온 자식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평균학력이 높디 높은 이 나라국민을 두고 무식하기 때문에 살기 힘들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그래 그래, 말이야 다 맞는 말이지만 세상엔 '수준'이란것이 있다. 그것이 문제란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난 서울대학교가 전세계 대학 서열에 몇번째에 위치하는 수준인지는 차마 민망해서 말 못한다. 서울대에 들어가려면 타고난 명석한 두뇌는 기본으로 하더라도피똥을 싸며 공부하고 또 공부해도 들어가기 어려운 것 아니던가. 그러나 다 부질없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다가 피똥만 싼 격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우민화 愚民化에 교육의 기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우민교육을 너무 잘받아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독자를 위해 해설을 곁들이자면 우민교육이란 국민을 멍청이로 만드는 교육을 뜻한다. 우민교육의 역사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그 틀이 확고히 잡힌 것을 해방 이후에 정권을 잡고 자기혼자 호위호식하려는 정치인들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잘도 이어져 왔다. 일본이라면 우민교육에는 일가견이 있었으리라. 제국주의의 망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미가제도 불사할 로보트같은 인간들이 필요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 일제의 우민교육 시스템을 제대로 사사받은 것이 우리의 교육계이다. 오죽하면 해방된지 30년이 넘도록 일제 교북까지 그대로 착용했을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거늘 우리의 지도자중 그 누가 백년후를 내다보고 정치를 했던가. 백년후를 내다보고 비자금을 꼬불친 인간들은 수두룩하다만, 교육방침은 하루가 멀다하고 바꾸기 일쑤였다. 일년에도 몇번씩 변경되는 입시정책은 교육부 장관이 바보멍청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전략이다. 허둥지둥 입시 정책에 끌려 다니며 무엇하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 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일류대학을 선호하는 사회풍조를 확실히 조장하고 초등학생때부터 대학입시에만 대비하는 입시전사 로보트로 만드는 것도 이 땅의 교육정치가들이 바보 멍청이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잘하고 있다. 국어사랑을 핑계로 한자교육을 없에서 일단 국민들을 옛문헌들 앞에서는 문맹이 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자를 모르면 단어를 이해하거나 새로이 조합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단어의 사용량이 제한되고 그것은 제한적인 사고를 하게되는 결과를 낳는다. '제한적인 사고'라는걸 쉬운 말로 하면 '무식하다'는 뜻이다.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 그 역사가 짧게 봐서 일제시대부터라고 봐도 백년이 다 되어간다. 그렇게 보면 이 민족은 아직 완전히 도태되지 않은게 다행이고 기적이다. 백성이 생각이 없으면 통치자는 그 노동력을 콘트롤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생각이 없는 국민. 철학이 없는 사람들. 이런 국민들은 언론만 잘 조장하면 얼마든지 내 세상으로 만들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했다. 지도자란 인간들이 학생들을 영화 매트릭스에서나 나오는 거대한 수경재배 시스템에서 조장된 기억만 주입받듯이 아무런 철학도 없는 죽은 정보만 입력 시키고, 스스로 생각하는 기능을 제거하기 위해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부터 암기 교육에 객관식 문항중에 답은 한가지밖에 없는 문제 풀기를 시켜서 대학을 졸업할 때 쯤이면 완전히 멍청이가 된 국민들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 고등학교에서 미술과목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철폐했다. 이미 음악교육도 사라졌고 특별활동도 멸종했다. 오로지 수능과목만 족집개 강의로 링겔주사처럼 투입되고 있다. 우민교육이 너무 심해지고 있다. 이 정도면 정치좀 쉽게 하려다가 나라가 망할 지경이다. 이것은 학교가 아니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며 거기서 길러지는 것들은 인간이 아니다. 아이들이 노래하지 않고, 놀이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이리저리 시도해 볼 겨를조차 없는 나라. 창조적인 사고는 뇌기능을 상실했다. 오늘도 말 못하는 붕어빵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 붕어빵들은 그 존재의 최대 목표인 대학을 들어가고 나면 더 이상할줄 아는게 없다. 곧바로 취업준비를 위한 입사시험공부를 하지만 세상은 학교가 아니다. 입시공부처럼 입사공부를 해봐야 점수대로 취직이 되는게 아니다. 과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것이다. 청년실업의 원인은 여기에 있다. 무조건 암기와 4개중 하나 답 고르기 밖에 배운것이 없는 무식한 국민을 양산했기 때문에 우리는 발전이 없이 병색만 짙어가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교육을 받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은 미래의 잠재적 실업자들이며 대한민국의 공황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이여. 살고 싶은가? 잘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볼펜을 들고 아무 종이에나 시를 써라. 시가 안써지면 우선 낙서라도 해라. 혹시 장롱위에 쳐박아 둔 통기타가 아직 있다면 다시 꺼내 녹슨 줄을 갈고 다시 조율을 하라. 아직 할줄 아는게 있다면 무엇이든 좋으니 '예술적인 것'을 찾아라. 살기도 힘들어 죽겠다는데 시를 쓰고 노래를 하라니 미친소리 같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예술지상주의자의 허무맹랑한 헛소리 같은가? 예술이 밥먹여주냐? 그렇다. 해봐라. 진짜 예술이 밥먹여준다. 예술을 향유하면 생각이 깊어지고 교양과 품위가 깃들인 눈빛이 되며 남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라면 취직은 걱정도 아니고 그런 사람이 계획한 일은 재미가 있고 제조한 물건은 우아함이 있어 남들도 탐을 내니 성공확률이 높다.

소위 선진국이란 것이 알고보면 다름아닌 '예술적인 면모'를 갖춘 나라들이다. 우리가 왜 이다지도 국민소득 2만불의 고지를 탈환하기 힘든 것이냐. 그 이유는 소득 1만불 그 이상부터는 단순히 근면성실한 노동력만으로 돈이 벌어지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운동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은 여기까지다. 여기까지는 어느 나라나 노력만 하면 다 올라 올 수 있다. 허리띠 졸라 매는 방식은고달프지만 한편 누구나 할수 있는 아주 단순한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허리디 졸라매고 피똥을 싸고 하루 세시간 밖에 안자고 뛰고 또 뛰어도 안되는게 있다. 다름아닌 예술적 우아함. 철학적 가치. 이것은 육체적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적 우민교육으로 탄탄하게 무장된 국가에서 값싼 집단 노동력으로 이룰 수 있는 소득수준, 생활 수준이 있는가하면 풍부한 문화 예술적 사회환경을 바탕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소득수준, 생활 수준이 있다. 우리는 노동력의 한계점을 넘어섰다. 땅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운영비도 올랐으니 당연히 마진이 더 큰 물건을 만들어 더 돈많은 나라에 수출을 해야한다. 그러자니 좋은 물건을 만들어 선진국을 대상으로 팔아야 하는데, 우리 물건은 왜 안팔릴까. 싼값에 사기에는 중국제에 안되고 품질로 해보자니 선진국 명품에 밀린다. 우리민족이 손재주 하나는 기똥차서 지금도 기능올림픽에 나가면 금메달을 줄줄이 엮어오는데 문제는 세계 디자인 어워드에서는 형편없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재주는 기계가 대체해 가는데 디자인은 영원한 인간의 몫이다. 우리는 기능적 감촉의 세계에서 미적 감각의 세계로 진보해야한다.

세계적으로 좋은 제품이란, 품질도 품질이거니와, 그 핵심은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포르쉐, 폴크스바겐, 혼다, 소니에서부터 매킨토시, 플레이보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공적 브랜드의 핵심은 철학이 바탕이 된 아름다움과 완벽한 기능이다. 철학이 있는 제품은 비싸고 강하다. 반면 기능은 충족되지만 철학이 없으나 대신 값이 싼 제품을 싸구려라고 하는 것이다. 철학을 중요하게 여겨 제품 아이디어부터 디자인, 제작, 홍보, 판매에 이르기 까지 모든 과정에서 일관된 철학을 유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저절로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환경이 국민성이고, 문화수준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예술에서 나온다. 예술을 향수하고, 음미하고, 동경하고, 존중하고, 갈구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적인 문화환경이 되어 줄때 손톱깍기 하나를 만들어도 보기에도 좋을 뿐더러 손,발톱도 예술적으로 깍이는 손톱깍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예술적인 물건들은 생활의 순간순간을 기쁘게 한다. 삶을 물질적인 수준이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한다. 배가 고파서 어렵게 한끼를 해결하는 신세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예술의 향기가 흐르는 식탁의 우아함은 느낄 수 있다. 그 우아함을 한번 맛본 사람은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하지만 배고픔, 그 이상을 생각해 본적 없는 사람은 돈이 많아도 창고에 곡식만 잔뜩 쌓아 놓을 뿐 결코 우아하고 행복한 식사시간을 가질줄 모른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큰돈을 들여 식당을 차려도 결코 장사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붕어빵들의 무조건적인 노력만으로 나라와 민족을 이끌 수 없다. 기왕에 헐벗고 굶주림에서 벗어나 선진국대열을 넘보는 출세를 했다면 이제는 예술을 알아야한다. 졸부가 상류사회에 어울리려면 그만한 교양과 지적수준을 갖춰야하듯이 국민소득 2만불의 선진국과 친구먹고 같이 놀고 싶으면 문화예술이 받쳐줘야한다. 이쑤시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 까지 그런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 죽는다. 바야흐로 예술만이 밥을 먹여준다. 우리가 농업에만 의존하는 후진국으로 되돌아 갈수도 없는 이상 이 시점에서는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제학자도 '국민소득 2만불 달성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의에 '예술과 철학의 부재'가 근본적 원인이며 한계라는 것을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다. 최근들어 이과를 홀대해서 국가기간산업에 헛점이 있다는걸 깨닫고는 장관 자리에 이과출신을 의무적으로 약간씩 배치한다는 둥 뒷북을 치고 있는데 예,체능 교육의 결핍이 근본적인 문제였다는걸 깨닫는데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정신이 빠지면 몸에 집착하듯이 예술이 결핍되면 외설이 만연한다. 형이상학이 가벼워지면 형이하학으로 기우는 균형의 이치. 작금 우리의 문화는 너무도 육체지향적이고 너무도 외설적이지 않은가. 성형수술이 오히려 경쟁적 자랑거리가 되고 텔레비젼 가요프로에 등장하는 소녀댄스그룹의 스테이지는 미아리쑈를 방불케한다. 한철 인기가 끝나가는 연예인은 퇴기처럼 마지막으로 누드 사진을 팔기에 바쁘고 젊은이들은 카드빚으로 제 몸을 명품 브랜드로 치장하는데 미쳐있다. 이 모든 천박한 풍조는 그들의 우매함이 아니다. 이 모든 외설은 국민들의 성욕이 넘쳐나서가 아니다. 예술이 결핍되고, 철학이 멸종하여 낭만이 사라지고 품위와 교양과 우아함을 잃어 버린 사회의 어두운 병색이다. 역사적으로 통치자들과 그 위정자들은 국민의 의식을 일깨우고 기껏 주입한 가치관에 혼란스러운 의구심을 품게하는 예술가들을 억압해왔다. 시인들을 감금하고, 의식있는 노래들을 금지시키고 모든 예술작품들을 검열하여 예술의 힘을 거세시켜왔다. 학교에서 진정한 예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을 예술적 기쁨보다 환락적 기쁨에 젖게 만들어 물욕을 만연하게 해서 스스로 돈버는 기계를 자처하도록 조장해 온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가경쟁시대가 도래하니 국가경쟁력의 업그레이드 절실해졌다.

유구한 우민교육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땅에서 깨어있는 예술가들은 멸종위기 생명체와도 같다. 예술대학마저 '입시전문학원'에서 주입식으로 교육받아 입학하는 풍토안에서 다행히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거나, 안했거나, 반항했거나,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했거나, 어쨋거나 끝까지 제 뇌수를 꺼내 바치지 않고 부득부득 살아남아 펜을 굴리고, 붓을 놀리고, 기타를 퉁기고, 제 뜻을 주장할 줄 아는 이들이 있다면, 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난국을 그대들이 떠 맡으라. 그대들 책임은 아니지만 때는 바야흐로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할 시절이니 세상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펜을 들고, 붓을 들고, 저마다 자신의 악기를 들고 이 물질만능의 천박하고 척박한 풍경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할 일이다. 또한 살고자 하는 학생들은 붕어빵 공장을 뛰쳐나와 도서관으로, 책방으로 가라. 거기서 교과서가 아닌 진실을 담은 책들을 찾아 내라. 만화책도 좋고 소설책도 좋다. 다만 수능에 출제 될 확률이 0%인 책들일 수록 좋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라. 지리산도 좋고 프랑스도 좋고 소말리아도 좋다. 미술관도 좋고 소극장도 좋다. 어디를 가든 처음 만나는 또 다른 자신을 만나리라. 몸은 그렇게 땅을 여행하고 정신은 예술세계를 여행하라. 불완전한 자아를 스스로 통제하고 안정적인 균형감각으로 사회적 질서를 우아한 템포로 맞추어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자율적은 힘은 예술적 정서가 깊이 배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대졸 청년들이 진정한 의미의 고급인력이 되어 사회 모든 요소에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고, 우리의 삶이 경제적 의미를 넘어서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려면 예술이 살아남아야한다. 학교에서 미술시간, 음악시간을 없에버리는 이 야만적이고 치졸하고 무식한 나라안에서 우리는 살아야하고 살기 위해서 붓을 꺽으면 안된다. 거듭 말하거니와 예술만이 이 총체적 난국의 대한민국에서 이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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