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꽤 오래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오래된 줄은 몰랐다. 넷플릭스를 넘기다가 발견한 명작 공포영화 장화, 홍련... 벌써 22년 전의 영화가 되어있다. 영화 속 앳되어 보였던 임수정, 문근영도 이제는 불혹을 훌쩍 넘거나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카테고리는 공포영화로 되어있지만 단순하게 공포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슬픈 영화이다.
2003년엔 기억에 남는 작품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을 비롯해서 올드보이, 실미도... 등등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극장을 많이 갔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서울 정동의 밤새워서 3편 연달아 상영하는 극장도 자주 갔었고 서울극장, 대한극장... 좋은 극장들도 많았는데 이젠 다들 없어져버린 추억의 장소들이 되어 버렸다. 이 영화도 그때 극장에 가서 보았던 영화 중 하나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한 20년 만에 재감상한 장화, 홍련... 너무 뛰어나고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은 다시 봐도 감동이 밀려온다.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장화, 홍련이다.
아빠와 딸 둘 수미와 수연이 아름다운 시골의 저택에 도착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집에는 의붓엄마가 있다. 수미와 수연은 의붓엄마를 매우 싫어한다. 그리고 의붓엄마의 알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
영화를 처음보면 이게 도대체 뭔 소리인지 오락가락 알다가도 알 수 없는 느낌이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모든 게 설명되는 순간이 온다. 그때 느끼는 슬픔... 무력감... 무심히 집을 떠나는 임수정의 무표정한 얼굴... 너무도 슬프게 들리는 주제곡 '돌이킬 수 없는 걸음' 임수정의 걸음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이 되어 버린다.
"너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뭔가 잊고 싶은 게 있는데,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게 있는데... 도저히 잊지도 못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거 있지… 근데 그게 평생 붙어 다녀. 유령처럼…"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나의 안 좋았던 기억과 매치되어서 영화를 보면서 깜짝 놀랐던 대사이다. 누구나 지워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들이 있는데 끝끝내 지워지지 않고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그 기억들이 떠오르면 너무 괴로워서 호흡이 가빠지기도 한다. 여기서 한 10년쯤 더 지나면 잊힐까? 모르겠다.
정말 찐한 공포영화를 원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스토리, 영상미, 음악, 연기 모두 만족한 영화였다. 요즘 점점 쇠락하는 한국영화가 다시 힘을 내서 2000년대 초반에 보여줬던 힘을 다시 보여줬으면 좋겠다.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니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고 예전에 들었던 음악들을 주로 듣게 된다는 영상을 보았는데 이건 영화도 마찬가지 같다. 넷플릭스를 넘기다가 예전에 감명깊게 봤던 영화들을 보면 다시 보게 된다. 나도 나이가 먹은 건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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